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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원에서 선비정신을 배우다- 청주 흥덕도서관

  • 작성자 :안은숙 작성일 :2019.07.02

서원에서 선비정신을 배우다

 

619, 밤꽃 향내 짙게 맡으며 고봉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광주 월봉서원으로 향했다.

여기는 너브실. 넓은 골짜기라는 뜻으로 행주 기씨 집성촌이다. 기묘사화에 가담한 고봉선생의 작은 아버지. 그 여파로 고봉선생의 아버지는 이곳에 내려와 살게 되었다. 기와가 얹혀 있는 낮은 담장이 눈길을 끈다. 황토색 담장 길을 따라가니 그 끝에 월봉서원이 있다.

서원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백우산. 흰 소가 누어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 청주의 주산인 우암산도 그러한데. 이것도 인연일터. 맑은 기운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서원에서의 선비체험은 유생복을 입어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행전을 치고, 도포를 입고, 유슬을 매고, 유건을 썼다. 처음 입어 보는 것이라 친구의 손길이 필요했다.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해서 유슬띠를 매 주고, 바르게 유건도 씌어주고.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는 정겨운 시간이었다. 다음은 옛 책 만들기. 실 가는 곳에 바늘이 따라오듯 유생이 있는 곳에 책이 있다. 오침법으로 옛 책을 만들고 책제목도 달았다. 붓펜으로 책제목을 쓸 때는 글씨가 삐뚤어지지 않게 초집중을 해야만 했다. 이 책 안에 무엇을 담을까? 고봉 선생님이라면 무엇을 담았을까?

유생복을 입고 고봉선생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서원으로 향했다. 해설사 선생님께 고봉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몸과 마음이 저절로 공손해진다.

다른 서원과는 다르게 월봉서원만의 특징이 있다는데, 바로 한 건물에 현판이 세 개 있다는 것. <월봉서원, 빙월당, 충신당>이 이것이다. 또 장판각이 있다.

이곳에는 고봉선생의 문집 판각과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고봉선생은 명종~선조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당대 최고의 학자는 퇴계 이황선생이었다. 낙향하는 퇴계에게 선조는 후임을 요청했다. 퇴계는 고봉선생을 통유(通儒: 온 세상일에 통달한 실력 있는 유학자)라고 하며 추천했다. 고봉선생의 학문은 퇴계선생도 인정할 만큼 뛰어났었다. 그 예가 바로 사단칠정을 논한 편지글이다. 120통이 넘는 편지로 8년간 자신들의 철학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당시 성균관 대사성이었던 58세의 퇴계 이황 그리고 갓 과거에 급제한 32세의 풋내기 신참 고봉 기대승. 둘은 나이, 서열, 파벌을 따지지 않았다. 학문과 세상일에 대해 서로 조언하고 배울 뿐이었다. 배우는 게 즐겁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랴. 이런 점에서 두 분은 군자의 덕목 중 하나인 배움을 즐기며 실천한 인물이지 싶다. 뜻이 통하는 벗과의 편지만으로도 기쁘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한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시가 있다.

<고봉의 송시>

한강수는 넘실넘실 밤낮으로 흐르는데,

선생님의 이번 떠나심 어지하면 만류할꼬

백사장가 닻줄 잡고 마뭇거리는 곳에

이별의 아픔에 만섬의 시름 끝이없어라

 

<퇴계의 답시>

배에 나란히 앉았으니 모두 다 좋은 사람

돌아가려는 마음 종일 끌리어 머물렀네

한강물 다 가져다 행인의 벼루에 더하여

이별의 무한한 시름 써내고 싶어라

 

~ 정말이지 조선 최고의 로맨스라 할만하다. 월봉서원에서는 두 분의 특별한 만남을 극으로 만들어 탐방객들과 함께 즐긴다고 한다. 이름하야 월봉 로맨스’. 어떤 맛이 느껴질지 사뭇 궁금하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맛있는 전라도 음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사장님의 특별식을 한 상 잘 차려 받고 시원하고 달달한 수박까지 먹었다. (감사합니다.~^^~)

    다시 월봉서원으로 왔다. 날씨가 더워졌다. 유물관을 둘러보면서 더위를 식혔다. 고봉선생이 쓰신 친필 편지도 보고 묘비명 탁본도 보았다. 고봉선생이 쓰신 퇴계 선생님의 묘비명 탁본을 보았다. 퇴계 선생님은 고봉선생께는 절대로 자신의 묘비명을 쓰게 하지 말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고봉에게 부탁하면 사실에도 없는 장황한 일을 늘어놓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란다. 이 말에서 나는 두 분의 관계가 얼마나 도타웠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교육관으로 들어와 선비들이 정신을 수양할 때 행했던 명상과 체조를 했다. 이마를 비롯해서 눈, , 귀를 문지르고 잡아당기면서 온몸의 기운을 돌렸다. 그리고는 고봉선생의 묘소를 찾아갔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오른 길에 고봉선생의 묘가 나왔다. 상판석과 비석은 처음 것 그대로라고 한다. 새까만 돌로 된 상판석, 거의 닳아 없어진 비문에서 세월의 흐름이 전해졌다. 묘를 보면서 (), (), ()’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는 사대부가 반드시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대한 고봉선생의 대답이었다. 기는 기미를 살펴 의리에 벗어나지     않는 것, 세는 형세를 살펴서 구차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 사는 목숨을 걸고 정당한 도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면 충분하다고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현장을 잘 살펴야 되고 구차하지 않아야 하며 정당한 도리에는 목숨을 걸 정도로 지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이 세 가지 정신을 지키며 살았을 고봉 선생님을 생각하니 경건해졌다.

이렇게 우리는 하루 선비체험을 하고 고봉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군자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음미할 수 있었다. 또한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겠는가)’의 기쁨을 고봉선생과 퇴계 선생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오늘 하루 고봉선생의 사상과 일대기를 듣고 선비체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또 도움을 주시고 친절하게 해설해 주신 월봉서원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정조가 고봉선생을 비유한 글을 생각하며 서원에서 선비정신을 배우다의 특별한 여행을 마친다.

 

氷心雪月(빙심설월: 눈 내리는 달밤의 얼음처럼 맑은 마음)

   

 

댓글 (1)    댓글쓰기
  • 월봉서원 (wbseowon) 2019-07-06 09:22:03

    청주에 흥덕도서관 선생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월봉서원에 다녀가신 후기를 멋진글로 표현에 주시니 정말 좋습니다.
    저희 서원에서 선비체험, 옛 책만들기등 체험프로그램과 서원 및 철학자의 길을 따라 사색하는 시간을 갖고
    고봉 선생님 묘소까지 열정으로 하루를 잘 보내시는 선생님들에게 저 또한 감사했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날씨가 몹씨 덥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광주에 발걸음하시걸랑 월봉서원도 들렸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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