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제9회 장성 요월정 邀月亭에서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5.20
요월정을 간다. 요월정은 장성군 황룡면 황룡리에 있는 정자이다. 월봉서원에서 장성 쪽으로 3-4Km 가면 있다.  요월 邀月은 ‘달을 맞는다.’는 뜻이다. 맑은 황룡강변에서 달을 맞는다는 의미의 이 정자는  상당히 높은 곳에 지어진 정자이다.

   정자를 들어가는 계단 입구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이 용이 전설로 전하여지는 황룡 두 마리이다. 한 마리는 하늘로 승천한 용, 나머지 한 마리는 샘에 물 길러 온 처녀의 발꿈치에 꼬리가 밟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고 만 용. 어느 용이 승천한 용일까 생각하여 보았으나 잘 모르겠다.    


정자에 오르니  경치가 정말 좋다. 배롱나무와 소나무 아래에 황룡강이 흐르고  황룡 들녘이 잘 퍼져 있다. 한 곳에 있는 안내판을  읽었다. 거기에는 ‘요월정은 조선의 명종 때 공조좌랑을 지낸 김경우(金景愚 1517-1559)가 1550년대에 산수와 벗하며 풍류를 즐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서 당대의 명사인 하서 김인후와 고봉 기대승, 송천 양응정이 시를 읊고 놀았다’고 적혀 있다.

  요월정 원림은 경치가 너무 빼어나다. 김경우의 후손인 김경찬의 일화도 재미있는  스토리텔링 감이다. 김경찬은 요월정 경치를 찬탄하여 ‘조선의 제일’ 라고 시를 썼단다. 그런데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서 문제가 되었다. 황룡의 경치가 조선의 제일이라면 임금이 사는 한양은 조선의 제2라는 것이냐는 시비가 붙었다. 김경찬은 한양에 끌려가서  심문을 당하자 ‘황룡은 조선의 제일이요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은 천하의 제일이라.’고 답변하여 화를 면하였다 한다. 만약에 중국 명나라 조정에서 이를 알아서 김경찬을 다시 추국하였다면 김경찬이 명나라 수도는 무엇이라 답변하였을지 자못 궁금하다.

  정자를 보니 요월정이라고 적힌 한문 현판이 두 개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김인후, 기대승, 양응정이 읊었다는 요월정 시는 찾아 볼 수 없다. 방 안에 있을 것 같아 문을 열어 보았으나 잠겨 있다.

   고봉집과 하서집에는 고봉과 하서가 읊은 요월정 시가  있다. 먼저 기대승의 시부터 보자. 기대승(1527-1572)은 김경우보다 10살 아래이다. 고봉이 1558년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김경우와는 그가 과거 급제하기 이전에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고봉이  지은 요월정 관련 시는 두 수이다. 먼저 첫 번째 수를 보자.
  
   요월정의 운〔邀月亭韻〕

그대의 재기가 수레를 탈 만한데 / 夫君才氣合乘車
     강호에 방랑한 나머지 자취를 감추었네 / 遁跡江湖放浪餘
     술을 실은 배 끄니 풍색이 조용하고 / 載酒引船風色嬾
     꽃을 심고 지팡이 잡으니 달빛도 밝네 / 藝花扶杖月華虛


     옛 학문에 마음 두니 오직 마음이고 / 經心舊學惟心也
     새로운 시에 손을 대니 다시 문채로워 / 脫手新詩更賁如
     구천에서 우로가 응당 내려오리니 / 雨露九天應下漏
     직장의 위망이 주려를 누르리라 / 直長威望壓周廬



여기에서 ‘수레를 탈 만한데’는  벼슬할 만하다는 말이다. 《대학장구》 전 10장에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기를 ‘마승(馬乘)을 기르는 이는 닭과 돼지를 기르지 않는다.’ 하였다.”는 말이 있는데, 그 주에 “선비로서 처음 대부(大夫)가 된 자이다.” 하였다. 주려(周廬)는 궁궐을 호위하기 위하여 설치한 군막(軍幕)이다.

  두 번째 시를 보자.좌랑 김경우 요월정에 준 시〔與金佐郞景愚邀月亭詩〕

지붕 위에 흐르는 햇살 굴러가는 수레 같아 / 屋角流光似轉車
강산에는 지금 구월의 가을빛이로다 / 江山今見九秋餘
쓸쓸한 낙엽 빗속에 나부끼고 / 蕭蕭落木空飄雨
첩첩의 먼 봉우리 허공에 솟았구나 / 疊疊遙岑欲挿虛

소나무 아래에 술병 차니 정이 무궁하고 / 松□□壺情不盡
물가에 손님 맞으니 흥이 어떠한가 / 水邊邀客興何如
소광한 몸 스스로 한가로움 좋아해서이니 / 疎狂自有偸閑僻
밝은 때에 벼슬이 싫어서만은 아니로세 / 未必明時厭直廬



여기에서  하서 김인후(1510-1560)의 요월정 시도 같이 음미하여 보자.


밝은 달은 툇마루에 마주쳐 희고  / 月色當軒白
가을빛은 눈에 서려 파랗군 그래 /  秋光入眼靑
이 날 밤 정자에 이 경치 보니   /  登臨此夜景
한 세상의 부평이 가소롭구려.   /   一世笑浮萍



   그런데  김경우는 1559년에 별세한다. 이 때 고봉은 김경우에 대한  만시 2수를 쓴다. 이 시는  고봉집에 남아 있다.

김 좌랑 경우에 대한 만사〔挽金佐郞景愚〕2수

흰 장막 갠 모래 바라보는 속에 밝았는데 / 白幔靑莎望裏明
한 병 술로 그대는 나의 걸음 기다렸지 / 一壺君爲佇吾行
    할미새 사는 곳의 묵은 풀 정을 참을 길 없으니 / 鴒原宿草情難忍
    맑은 기쁨 저버리고 사생이 막혀 있네 / 孤負淸歡隔死生

    요월정 속에서 몇 번이나 취했던가 / 邀月亭中幾醉醒
    인간의 모든 일 부평에 부치노라 / 人間萬事付流萍
    청산은 눈에 가득 가을 빛 차가운데 / 靑山滿目秋光冷
    쓸쓸한 흰 달빛 밤중에 들어오네 / 惆悵銀蟾入夜凉



여기에서 ‘영원(鴒原)의……없으니’는 고봉이  김경우의 무덤에 풀이 묵도록 가보지 못함을 탄식한 것이다. 영 鴒은 할미새이다.


              김세곤(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 20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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